[QT一言アドバイス] 2020年5月19日(火)

申命記 20:10〜20
「降伏を勧めるべき時と悪を滅ぼすべき時」

ーみことばの黙想ー
町を攻略するときの手順が教えられています。聖書は全体をとおして、戦争を勧めてはいません。しかし、戦いそのものは否定していません。避けることのできない戦いが残念ながら、罪ある世においてはあります。神は悪については徹底的に滅ぼされます。一方で、平和の君でもあります。悔い改めて、神を受け入れるものに対する憐みも計り知れません。現代においては、イエスによる福音によって、随分と戦い方は霊的なものとなりましたが、旧約聖書をとおして、霊的な戦いについて黙想し、学んでいきたいと思います。

10〜15節
神様は霊的なきよさを保ち、罪ある世に希望を示すために、やむを得ない戦いを命じられることがあります。しかし、基本的に神様がしようとなさることは、もう既に滅びが確定している救いようのない罪にまみれた人間を、いかに救おうという救いの計画です。ですから、主は戦いを好まれているわけでは決してありません。
したがって、神様はもし、カナンの地の民以外を征服しようとする時には、必ず、降伏を進めなければならないと命じたわけです。むやみやたらに好戦的になることは神の御心ではありません。しかし、イスラエルの民と戦わないといけない状況になっている時点で、この民が神の御心から外れた行動をとっていることは、間違いありません。ですから、これに対する責任があり、滅びからは逃れても、財産と家族がとられ、苦しみを伴います。
しかし、これを略奪を肯定化するものと考えて、好戦的になれば、そのようなイスラエルの民もそれ相応に責任を取ることになります。これは戦いに、制限をかけたものです。

16〜20節
神様はカナンの民と戦うときは徹底的に滅ぼすように命じておられます。なぜ、この差があるでしょうか? カナンの民は霊的に積極的に神に敵対するものだと考えても良いでしょう。ですから、カナンの民との戦いは、神の裁きという側面があります。
こう考えると、神様は恐ろしい方という印象ばかりになりそうですが、ここまで、ずっと忍耐されてきた歴史、そして、人は皆、神の働きなしには、どちらにせよ、罪による死という滅び以外にないということであり、特別に神が厳しく裁いたというよりも、すでに下されている裁きから救うことを見放されたという方向で考えるべきです。
カナンの民の罪は酷かったので、神様は、イスラエルの民のきよさを保つために、聖絶を命令され、徹底的に罪の根絶を行います。しかし、一方で、それとは関係のないことは禁止されます。
なぜ、ここまで、厳しい戦いを強いるかというと、人類唯一の罪から救いの希望を表す、神の国のモデルとしていくイスラエルの民に罪が混じっては、誰も救われなくなってしまうからです。
現代の戦い方、骨肉によるものではありません。しかし、霊的なものとして、私たちも日々霊的な戦いをするべきです。

ーみことばの適用ー
主は悪を憎んでおられます。ですから、主を恐れて、罪とは徹底的に向かい合い、きよさを求めます。神様の方法で生き、神の御心の通り、主の前に悔い改めて生き、イエスを信じ、伝えます。

ー今日の祈りー
主よ、善にはさとく、悪には疎くさせてください。また、そして、主の希望を知らせることに用いてください。

[QT묵상 가이드] 2020년5월16일(토)

신명기 19:1~14
“자비와 긍휼의 피난처, 도피성”

-말씀 묵상-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부터, 사람의 연약함 때문에 사고나 다툼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것들을 통해 불필요한 피를 흘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해를 입지 않도록 배려하십니다.

1~6절
하나님은 의도적이 아닌 과실(사고)로 사람이 죽었을 경우, 복수로 더 많은 살인이 일어나지 않도록 도피성을 미리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연약함을 잘 아십니다. 그러므로 할 수 없는 것을 명령하시지 않고, 연약하여도 할 수 있을만한 것을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의 마음 그 끝에는 하나님 나라가 완전히 나타납니다. 이것은 마지막 때에 예수님의 재림으로 성취되어갈 것을 생각하면 현재진행형입니다. 그 하나님 나라는 미움과 슬픔이 아닌 은혜와 긍휼, 용서와 은혜가 넘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용서의 실천의 형태로써 도피성을 두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 하나님의 보배인 백성이 함부로 해를 입어서는 안됩니다.

7~14절
한편, 살인이 죄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특히 고의로 일어난 것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 죄에 상응하는 책임을 다하게 됩니다. 하나님 백성 가운데에서 죄를 제거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중에 주께서 회복하고자 하시는 하나님 나라에는 죄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죄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죽음이라는 무거운 결과가 따릅니다. 그러나 이를 율법적으로 행한다 해도 복수는 연이어질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한계가 있고 심지어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죄를 속량하기 위해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 있었습니다. 우리의 죄는 예수님의 희생으로 제거되었고, 또 부활하심으로 죄 사함 받은 새 영생을 얻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 대어라(마태복음5:39)” 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읽고 있는 신명기에도 “복수하는 것은 내 일이다(신명기32:35)”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심판은 주께 맡기고, 용서받은 자로서 나 또한 용서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악을 방치해도 되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남습니다. 먼저, 하나님은 악을 방치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죄를 지은 사람을 심판하지 말고 그 사람이 죄를 자각하고 회개할 수 있도록 예수님 곁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악과의 싸움에 대해, 나중에 바울이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악에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로마서12:21)”

자기 멋대로의 정의가 아닌, 하나님의 마음이 이루어지는 세상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말씀 적용-
오늘, 내 정의감으로 일을 바로잡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며, 회개하고 용서하며 사랑으로 세상을 섬기겠습니다. 내 행동의 동기가 하나님 나라의 자비와 긍휼을 나타내는 것인지, 내 멋대로의 정의감인지 돌이켜보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나 또한 구원받은 자입니다. 죄 있는 자를 몰아세우지 말고 회개와 용서라는 탈출의 길로 인도하는 돕는 자로 사용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