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묵상 가이드] 2020년5월21일(목)

신명기 21:15~23
“공평과 정의로 세우는 가정의 질서”

-말씀 묵상-
장자의 권리와 고집스럽고 반항적인 아들에 대한 가르침이 규정돼 있는 본문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이어가기 위한 방법을 하나님께서 정하셨습니다. 현재 우리의 생활과는 토대가 달라서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성경이 전하고자 하는 요점을 파악하여 주님의 마음을 알도록 합시다.

15~17절
사람이 두 명 이상의 아내를 두었을 때에 태어난 아들을 대하는 방법에 대해 규정되어 있습니다. 먼저, 주의해야 할 것은 성경이 일부다처제를 권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브라는 한 여인은 아담을 통해 만들어졌는데 아담과 이브는 원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장려가 아닌 인내입니다. 애초에 아내가 한 사람이라면 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결혼은 경솔하게 하는 것이 아닌 동시에 거룩한 관계여야 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마음이 사람에게 잘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아내가 두 명 이상인 사람들이 나름대로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경우도 장자에게는 어느 아내의 아들이냐에 상관없이 재산과 가계의 축복을 주어야 합니다. 그 가족의 축복은 아버지가 주는 것이나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인도하지 않으시는 한 장자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흘려보내야 하고, 장자 자신도 그것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가족에게는 그다지 현실적인 이야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기억해두고 싶은 것은 가족의 질서를 생각할 때 하나님의 권위를 염두에 두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가족은 나에게 맡겨진 것이지만 내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입니다. 또한 주님의 권위에 순종함으로 가족의 질서를 지킬 수 있습니다.

18~23절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 자녀를 돌로 쳐 죽이라는 엄중한 규정이 쓰여 있습니다. 지금은 생각할 수 없는 것이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권위와 관계가 있습니다. 부모에게 자녀의 생명을 허락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므로 부모에게 권위를 주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부모가 하나님께 순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 자는 하나님 또한 거역합니다. 이 또한 역시 가정 가운데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적용을 할 수 있습니다. 자녀가 순종할만하도록 존경받는 부모가 됩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부모에게 권위를 나타내는 자녀가 됩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무에 매달리는 사형을 당한 사람에 대한 대처입니다. 나무에 매달리는 것은 하나님에게 저주를 받은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부정함이 하나님 나라에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그 시체는 그날 안에 묻어주어야 합니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연결이 되지 않는 이야기처럼 생각되지만, 예수님에게로 이어지는 이야기라는 것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사실 받을 가치도 없는 탕자가, 죄가 전혀 없으신 진짜 하나님의 아들이 나무에 매달린 희생을 통해 구원받고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크신 은혜를 알기 원합니다.

-말씀 적용-
하나님의 권위를 기억하며 가족을 대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수 있도록 가족을 대하며 가족과 함께 주님의 권위를 훼손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우리 가족을 생각할 때, 우리는 정말 죄가 많음을 성경을 통해 느낍니다. 가족도 나 자신도 예수님의 복음의 은혜를 받아 누리는 자가 되게 해 주세요.

[QT묵상 가이드] 2020년5월20일(수)

신명기 21:1~14
“대속과 배려를 실천하는 성숙한 공동체”

-말씀 묵상-
범인을 알 수 없는 살인사건이 일어났을 때와 포로 된 여인과 결혼할 때의 규정이 쓰여 있습니다. 현재의 감각으로는 알기 어려운 내용이지만 당시의 기준과 하나님의 죄 사함 계획이라는 영적인 의미를 생각해보며, 왜 주님은 이러한 규칙을 만드셨을까를 묵상하고 오늘을 사는 우리도 하나님의 마음에 순종하는 은혜를 나눠봅시다.

1~9절
범인을 알 수 없는 살인사건이 발생했을 때의 대응이 규정되어 있습니다. 당시의 상황에서는 범인을 찾는 것은 어려웠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방치해서는 안된다고 하십니다. 애초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에 정착시키시고 나라를 세우시고자 하신 것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의 모델을 세상에 보여주고 사람들에게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의 소망을 알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하나님 나라에서 이유도 없이 조용히 누군가 살해당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당연히 개인의 책임이기도 하지만 백성 전체에게도 책임을 묻게될 것입니다.

먼저 범인과 목격자를 찾는데 그럼에도 찾지 못할 경우, 제일 가까이에 있는 성의 장로들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무고함을 선언하고 살인죄를 용서 받기 위해 암송아지를 죽여 백성 모두의 죄를 사함 받습니다. 이것을 합리적이지 않은 미신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영적으로는 매우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먼저, 죄를 간과하는 공동체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다음으로, 죄는 공동체 전체의 문제입니다. 또한 개인이든 공동체든 그 죄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합니다. 현대에 있어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이 그것입니다. 만약 범인을 잡는다 해도 주님이 용서하지 않으시면 근본적인 해결은 이뤄지지 않습니다.

10~14절
여기에서 포로 된 여인은 구별돼야 할 가나안 백성은 아니라는 것을 주의합시다. 또한 현대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 사회에서는 매우 인도적인 것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결혼하고자 하는 포로 된 여인의 인격을 존중하여 정중하게 대해야 하는데, 포로라는 이유로 막 대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단 주의해야 하는 것은 우상의 영향은 끊어내야만 하기 때문에 한 달 동안 마음을 정하게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결혼하는 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되는 것이므로 자기 민족과 결별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또한 하나님 나라의 모델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이해해야 합니다. 위의 두 가지는 항목상 맥락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가진 백성이 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규정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말씀 적용-
우리 주위에서 문제나 약한 입장에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남의 일로 여기지 않고 영적으로 중보하며 영적인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책임을 가지고 행동하겠습니다. 나의 회개는 물론 세상과 공동체의 문제에 대해서도 예수님 앞에서 기도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주께서 슬퍼하시는 일이 일어나도 내 멋대로 행동하는 게 아니라 주님이 가르쳐주신 방법으로 대처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공동체가 되게 해주세요.

[QT묵상 가이드] 2020년5월19일(화)

신명기 20:10~20
“평화를 제안할 때와 죄악을 진멸할 때”

-말씀 묵상-
한 성을 공격할 때의 수칙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성경 전체를 통해 전쟁을 권하고 있지는 않지만 다툼 그 자체는 부정하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죄 많은 세상에서는 피할 수 없는 싸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악을 철저히 심판하시는 한편 평화의 왕이시기도 합니다. 회개하여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한없는 긍휼이 임합니다. 현대에는 예수님의 복음으로 인해 싸움의 방법이 굉장히 영적인 것이 되었지만 구약 성경을 통해 영적인 싸움에 대해 묵상하며 배우고자 합니다.

10~15절
하나님은 영적인 거룩함을 지키며 죄 있는 세상에 소망을 나타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전쟁을 명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것은 이미 멸망이 확정된, 구원받을 수 없는 죄로 가득한 인간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전쟁을 좋아하시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만약 가나안 땅의 백성들 이외(변방의 땅을)를 정복하려고 할 때에는 반드시 평화를 제의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무턱대고 호전적으로 나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과 싸워야만 하는 상황이 된 시점에서, 이 백성들이 하나님의 마음에서 벗어난 행동을 취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책임이 있으며 멸망은 피했어도 재산과 가족을 빼앗기고 고통이 따를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약탈을 긍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호전적으로 나아간다면,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에 걸맞는 책임을 지게 됩니다. 이것은 전쟁에 제한이 있다는 것입니다.

16~20절
하나님은 가나안 땅의 백성들과 전쟁을 할 때에는 철저하게 멸망시키라고 명령하십니다. 왜 이러한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가나안 백성들은 영적으로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한 자들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나안 백성들과의 싸움은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하나님은 무서운 분이라는 인상만 남게 됩니다. 그러나 여기까지 쭉 인내하신 역사가 있습니다. 또한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역사하심 없이는 어쨌든 죄로 인한 죽음 즉 멸망 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특별히 하나님이 엄하게 심판하셨다기보다는 이미 내려진 심판에서 구할 것을 포기하셨다는 방향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가나안 백성들의 죄는 정도가 심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거룩함을 지키기 위해 구별될 것을 명령하시고 철저히 죄의 근절을 행하십니다. 그러나 한편, 그것과 상관없는 것은 금지됩니다. 왜 이렇게까지 힘든 전쟁을 강요하시냐면 인류 유일의, 죄로부터 구원의 소망을 나타내고 하나님 나라의 모델이 되어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죄가 있어서는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닙니다. 그러나 영적인 존재로서 우리도 매일 영적인 싸움을 해야 합니다.

-말씀 적용-
주님은 악을 미워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를 두려워하고 죄와 철저히 마주하며 거룩함을 구합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살고 하나님의 마음대로 주님 앞에 회개하며 예수님을 믿고 전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선한 데는 지혜롭고 악한 데는 미련하게 해주세요. 또한 주님의 소망을 알리는 데에 저를 사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