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묵상 가이드] 2020년3월11일(수)

요한복음 19:17~27

“십자가 명패의 의미, 메시아 왕위 즉위식”

-말씀 묵상-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장면의 기록입니다. 성경의 사건들 중에서 가장 주목해야 하는 것이 이 십자가 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 상황을 통해 우리의 신앙 생활에 있어서 기억해야 할 것을 나누고자 합니다.

17~22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돕게 된 자도 물론 있었지만, 그럼에도 예수님 그 자신이 스스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걸린 명패는 “유대 사람의 왕, 나사렛 예수”입니다. 심지어 당시 그곳에 있던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 수 있게끔 3개국어로 쓰였습니다. 이는 로마 총독 빌라도가 쓰게 한 것이고 유대인 지도자들의 말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의지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추측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영적으로 이야기하면 예수님은 유대인 뿐 아니라 온 열방의 왕이십니다.

사람의 의도와는 별개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허락하심 속에서 영적 진실이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우리도 주님이 허락하신 영적 진실을 바라보며 매일 걸어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3~27절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군인들은 예수님보다도 예수께서 입고 계셨던 옷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것은 왕이 입는 재질이 좋은 옷이었기 때문에 군인들이 제비를 뽑아 나누어 가졌습니다. 이것은 성경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또한 정작 그 일을 하고 있는 본인들의 직접적 의도와는 별개로 주께서 허락하신 상황입니다.

그런 가운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 때, 그 곁에 있었던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 외의 여성들, 그리고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말을 거시며 피로 이어져 있지는 않아도 이제부터는 모자 관계라며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합니다. 예수님에게는 형제가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이렇게 하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선포하신 것은, 단순히 어머니 마리아를 돌보아 달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로써 영적인 하나님의 가족이 형성되었다는 것을 나타내시기 위함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십자가를 통해 볼 수 있는 나의 가족은 누구입니까?

-말씀 적용-

하나님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 속에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생각하며 행동하는 우리가 됩시다.

-오늘의 기도-

예수님, 십자가를 통한 대속에 감사드립니다. 또한 회개합니다. 우리가 더 사랑하지 못하며 예수님께서 보고 계신 영적 현실을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처럼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QT묵상 가이드] 2020년3월10일(화)

요한복음 19:1~16

“조롱속에 역설적으로 드러난 메시아 왕의 전체성”

-말씀 묵상-

예수님께서 십자가형을 받으실 때, 사람들이 영적 진실을 깨닫지 못하는 비극적이기까지 한 상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얄궂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1~5절
빌라도는 예수님을 처벌하는 것을 허락하고, 금이 아닌 가시면류관과 왕이 입는 자색 옷을 상처 가득한 몸에 입히도록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사형시키려는 사람에 대한 혐의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보여주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서 어떤 죄도 발견하지 못했고, 사실 매질 조차도 이상한 일이었지만 그것을 통해 일이 마무리 되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을까요?

또한, “보시오. 이 사람이오”라며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내보입니다. 빌라도는 이 초라한 사람이 유대인의 왕일 리가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영적으로는 아이러니하게도, 빌라도 자신도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 말입니다. 사실 영적으로 모든 사람이 이 분을 보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6~16절
빌라도는 권위자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두려워합니다. 이것은 인간 세상의 얄궂은 현실입니다. 빌라도는 자신을 권위자라며 예수를 심판하는 자리에 있다고 예수님께 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적인 진리를 전하시죠. 11절의 말씀은 여러 가지 깊은 뜻이 있지만 간단히 이야기하면, 예수님이야말로 권위자라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영적으로 생각하면, 천지를 지으신 분에 대하여 스스로 권위자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진리를 깨달은 후에는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발언이었는지 슬플 정도로 알게 될 것입니다.

또,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판하지 않으면 로마 황제를 거역하는 것이라는 유대인들의 말에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결정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권위자라고 하면서도, 권위를 보여주기는커녕 사람들을 두려워해 그들에게 굴복했습니다. 또한 로마에는 법이 존재했는데 권위의 문제로 예수님을 사형시키려고 했지만 법적으로는 아무 죄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죄가 없는데 사형을 시키면, 그것이 오히려 로마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일이 됩니다.

말을 하자면 끝이 없지만, 영적인 진실을 깨닫지 못하면 아무리 우수한 사람일지라도 영적으로는 어리석은 판단을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 적용-

영적인 진실을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그리스도에게서 눈을 돌리지 않고 싶다. 무언가를 결정할 때, 말씀과 더불어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를 생각하고 기도하며 주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해 나아갈 수 있도록 하자.

-오늘의 기도-

하나님, 제 힘으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택을 할 수 없습니다. 언제나 주를 가까이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QT묵상 가이드] 2020년3월7일(토)

요한복음 18:1~14

“자발적으로 기꺼이 걸어가는 십자가의 길”

-말씀 묵상-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에서의 기도 후, 예루살렘 성전을 끼고 있는 골짜기 건너편 동산으로 가셨습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감람산이나 겟세마네 동산이라고도 기록되어 있고, 제자들이 지쳐 잠든 중에 예수님이 핏방울 같은 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신 모습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그 장면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요한복음은 복음서 중에서도 꽤 나중에 쓰여진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으므로 일부러 중복된 내용을 피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한편, 최후의 만찬에서의 기도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1~11절
유다의 배신으로, 예수님을 없애고자 하는 자들이 그분을 잡으려고 왔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도망하지도, 숨지도 않으시고 당당하게 자기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이전에, 어떤 자들에게 둘러싸였어도 간단히 빠져나오셨던 예수님의 능력을 떠올려 보면 이번에도 간단히 그러실 거라고 생각됩니다. 실제로, 사람들이 말씀만으로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달리셔야만 하는 영적인 “때”를 알고 계시는 예수님은 그 상황을 받아들이십니다.

한편, 베드로는 그 상황에 저항하며 ‘말고’라는 사람의 귀를 베었습니다. 베드로는 손에 칼을 가지고 있고 모든 제자가 배신하여도 자기만큼은 배신하지 않겠다고 선포하였습니다. 베드로의 결의는 거짓이 아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칼을 집어 넣으라고 하십니다. 덧붙여 말고의 귀도 예수님께서 치유해주셨지요.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또한 십자가를 부정한다면 우리의 구원도 있을 수 없습니다. 참으로 냉엄한 현실입니다.

12~14절
예수님은 당시의 대제사장 가야바의 장인, 안나스에게로 끌려 가셨습니다. 대제사장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중재하고, 죄의 희생을 치른 후 하나님에게 백성의 구원을 구하는 역할을 가진 사람입니다. 영적으로는 예수님이시지만 형식상 당시에는 가야바였습니다. 이전에 가야바는 그 의미까지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한사람이 희생될 것이라는 사실을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은 옳지 못했지만 영적인 현실을 바르게 표현했습니다.

아무리 우수한 사람일지라도 영적인 현실은 성령에 의하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애써도 그 방향성은 틀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 적용-

사람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써 주신다. 그러므로 주께서 가르쳐주시기를 간절히 구하며, 주께서 원하시는 것에 순종해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며 기도하자.

-오늘의 기도-

하나님,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이룰 수 없는 하나님의 마음에 순종할 수 있기를 원하오니 힘과 지혜를 허락해 주시고 우리를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