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묵상 가이드] 2020년6월27일(토)

시편 132:1~18
“주님 계신 곳에 참된 만족과 구원이 있습니다”

-말씀 묵상-
성전으로 향할 때 부르는 찬송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다윗이 주님을 생각하며 성전을 간구한 모습과 주께서 그에 응답하신 모습을 노래로 하여 주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1~10절
다윗은 주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수고하였습니다. 물론 주님이 도와주셨기에 그 수고를 다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 자신도 주님을 구하며 사울왕의 미숙함과 자기자신의 미숙함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면서 성전 건축을 준비했습니다. 성전을 완성하는 것은 아들 솔로몬이지만, 그 사전 준비를 모두 갖춘 것은 다윗입니다.

한편, 눈여겨보고 싶은 것은 아무리 주님을 위해 노력해도 주님이 원하지 않으시면 그 노력은 무의미합니다. 자기만족으로 준비해도 그곳에 주님이 계시지 않으면 허무해집니다. 그러므로 더욱 다윗은 주님이 오시기를 진심으로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계시면 광야든, 왕궁이든, 성전이든 바로 그곳이 축복의 장소입니다. 아무리 강한 군대, 경제력, 지혜라 하더라도 주님이 지켜주시지 않으면 그것들은 사라질 것이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기다리는 마음은 예언적인 고백까지도 끌어내고 있습니다. 기름 부음 받은 이, 택함 받은 자, 후대의 왕들인데 본질적으로는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11~18절
이렇게 주님을 구하고 있는 다윗에게 주님이 응답하십니다. 다윗이 간구하는 것이 기본적으로는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었기에 다윗에게 약속의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다윗 왕조를 오래 이어가겠다는 약속, 이는 나중에 다윗의 후손으로부터 메시아가 왕으로 오신다는 것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택함 받은 것은 우연이 아니라 영적인 필연에 의한 것입니다. 그것은 다윗이 의롭기 때문이 아닌, 주님께서 적극적으로 개입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간청하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이 사람을 생각해 주심으로, 감사가 넘칩니다. 주님은 오늘이라는 하루를 살게 하시는 분입니다. 주님의 축복을 받는다면 오늘의 양식도 허락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문제는, 주님을 받아들이느냐 마느냐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받아들인 사람의 특징은 주님이 오실 것을 준비하면서 주님의 사역에 기쁨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말씀 적용-
오늘의 시편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오늘도 주님과 풍성한 교제를 나누며 실제적으로 준비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평안이 저를 통해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넘치게 해주세요.

[QT묵상 가이드] 2020년6월26일(금)

시편 130:1~131:3
“기도하며 기다리고 바람이 성도의 믿음입니다”

-말씀 묵상-
성전으로 향할 때의 찬양이 이어집니다. 오늘의 두 시편은 주를 기다리는 찬양입니다. 성전을 향하는 노래는 기본적으로 주님에 대한 감사와 기쁨, 기대가 넘치는 찬양입니다.

130편
시편 기자는 밑바닥의 상황에서 주님을 찾습니다. 우리는 상황이 좋지 않을 때 어떤 자세로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나요?

가장 나쁜 것은 주님의 도움이 필요한데 부르지 않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안 좋은 것은 주께 대하여 반항적으로 부르짖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문제는 죄가 원인이지만 하나님에게 책임을 전가하여 자신의 기분을 달래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를 의식하고 있다는 관점에서는 상대적으로 낫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상징적이죠. 다음으로 비교적 좋은 것은 단순히 주님을 기대하는 자세일까요? 아무리 힘들어도 주님이 어떻게든 해주실 것이라는 소망이 있는 자세입니다. 언뜻 보기엔 좋아 보이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는 건 내 상황을 뒤로 미루고 주님만 보는 상황에서 자칫 잘못하면 상황만 좋게 해준다면 뭐든지 좋으니 구한다는 우상숭배의 위험성을 내포한 태도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자세는, 스스로의 어리석음과 문제를 인식한 다음 회개하고 주님께 자비를 구하는 자세입니다. 언뜻 보기엔 편한 자세로 보이기도 하지만, 정말 영적인 상황을 안다면 오늘 시편의 저자처럼 자신이 밑바닥인 상황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사람의 노력으로 포장할 단계가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의 불의는 눈여겨보지 않으시고 심판이 아닌, 주님을 부르는 자를 용서하고자 하십니다. 용서하심의 힘으로 우리는 주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놀라울 정도이며 단순한 권위에 대한 두려움과도 다른 존경입니다. 아무리 어두운 가운데서도, 파수꾼이 아침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처럼, 바라지 않을 수 없는 구원입니다. 따라서 주님을 찾도록 선언하며 나아갑시다.

131편
다윗이 불렀다고고 명기되어 있는 찬송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주께 축복받은 리더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축복받고 자신이 영예를 누리는 것은, 주님이 축복해 주시기 때문인 것을 실패를 통해서조차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지도자이기도 한 다윗마저도 어린아이가 엄마를 찾듯 주를 찾지 않을 수 없었을 정도로 주님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나에게는 더욱 주님이 필요합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것을 백성에게 권면하는 찬양입니다. 여기서 또 하나 주님을 바랄 때 중요한 것은 기다림입니다.

-말씀 적용-
내 사정으로만 주님을 찾지 않고, 낮아진 회개로써 주님께만 의지하겠습니다. 고통 가운데 주님이 도와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나아가겠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도움을 기다리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내가 제멋대로 나아가지 않고, 주님을 바라며 기다릴 수 있길 소망합니다. 또한 우리 이웃도 주님을 바라며 기다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QT묵상 가이드] 2020년6월25일(목)

시편 129:1~8
“악인은 하나님 백성을 결코 이기지 못합니다”

-말씀 묵상-
성전을 향해 가며 찬양하는 노래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의 시편은 고통 가운데 구원해주실 주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1~4절
중학생 때 집에서 떨어진 중학교를 다녔는데 그때 그리스도인의 행동 패턴이 세상 속 동세대와 달랐기 때문인지, 따돌림의 대상이 됐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게까지 심한 따돌림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항상 바른 일을 하려는 자세가 주위에서 보기에 별로였는지 이상한 놈이라는 꼬리표가 붙어서 상대해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당시의 저는 붙임성이 없기도 했던 것 같구요.

그때 많은 믿는 분들의 중보가 있어서 이겨낼 수 있었지만, 그것은 상대방과 싸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따돌림 당한 원인이기도 한, 옳다고 생각되는 것을 철저히 행했습니다. 성적과 스포츠 등 경주에서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옳다고 생각되는 것에 대해서는 한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은 한편, 스스로 잘못했다고 느끼는 것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사과했습니다. 스스로 잘못된 것은 솔직하게 사과하는 모습이 좋았던 건지 관계는 개선되어 갔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 바르게 나아가려 해도 그것이 왠지 마음에 들지 않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은 의로운 분입니다. 그러니 주님이 계시하시는 것도 옳습니다. 악인의 길은 아무리 편하고 손쉬워 보여도 역시 계속되지 못합니다. 주님은 보호하시며, 옳은 일을 행하십니다. 주님을 신뢰하며 나아갑시다.

5~8절
129편은 하나님을 거스르고 사는 자의 말로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미워하고, 하나님의 백성 또 그분의 방법을 미워하는 자에게 수치를 당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악을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확실히 처음에는 무성하게 자라도, 자라기 전에 말라 버리는 풀과 같습니다. 열매를 맺지도 않고 열매를 거두려고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려는 자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주님을 거역한다기보다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 언뜻 즐겁고 편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하나님이 분명히 그런 백성을 멀리하시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주께서 주님의 백성을 지키시고 인도하심을 찬양합시다.

-말씀 적용-
주님을 따르지 않는 것은, 그냥 좀 위험한 정도가 아니라 실패 그 자체임을 알고 오늘도 주님이 지켜주신다는 것을 기억하며 오늘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을 찬양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제 마음을 주님으로 채워주세요. 주위가 아무리 메말라 있어도, 저는 주님의 은혜로 윤택하여 주위를 윤택하게 하는 자가 되게 해주세요. 오직 주님께만 영광이 있기를 바랍니다.

[QT묵상 가이드] 2020년6월24일(수)

시편 128:1~6
“하나님의 길을 걸으면 평화의 복을 누립니다”

-말씀 묵상-
주님의 성전을 향할 때 찬송했던 시편입니다.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기쁨을 묵상해봅시다.

1~4절
우리는 행복을 구하고 있는데, 행복이란 무엇입니까? 부와 명예를 가지고 있어도 행복도가 높다고는 말하기 어렵고, 반대로 가난해도 행복도가 높을 수 있습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주님을 두려워하고 주님의 길을 걷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는 이렇게 반복하고 있는 단순한 진리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 결과로서의 우리 사회를 보면, 일본도 한국도 경제적으로는 톱 레벨이지만 불행히도 자살률도 톱 레벨입니다.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에서조차 주를 경외하는 청년들이 줄어 들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행복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행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매일 주님의 보호 속에서 일하고, 양식을 얻는 기쁨을 알아야 합니다. 가정에서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내도 아이도 보물로 생각합니다. 반대로 말해 주를 경외하는 가장이 있는 집 사람들은 행복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단, 주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부나 다툼의 유무에 관계없이 행복도가 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살아가는 목적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행복의 기본을 착각하지 않도록 합시다.

5~6절
주님 앞에 나아가려는 자는 자신이 주님을 간구하는 행복을 생각해 만족하며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대한 축복을 선언합니다.

이 노래의 주어는 항상 내가 아닌, “주”이며, 대상이 되는 상대방은 “주를 경외하며 주님의 길로 행하는 모든 사람”이며, “당신”입니다. 주로 가득 차있는 사람은 축복이 넘치기 때문에 상대방의 축복을 생각할 여유가 생깁니다. 이것은 단순히 부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단순히 상황이 좋은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비를 보라고 선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안 좋을 때, 다툼이 있을 때, 주님의 자비와 평화가 있는 것이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평화와 축복을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상황에 관계없이 사람들에게 주님의 축복을 선포하는 자가 됩시다.

-말씀 적용-
함께 기쁨의 노래를 부르며 주님 앞에 나아가려는 자가 더해지도록 오늘도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겠습니다. 그리고 함께 주님 앞에 나아가는 자들을 격려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우리를 주님께 대한 찬송과 기쁨, 축복으로 가득하게 해 주시고, 저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주님께 대한 감사함이 넘치게 해 주세요.

[QT묵상 가이드] 2020년6월23일(화)

시편 127:1~5
“우리 인생의 건축자는 하나님이십니다”

-말씀 묵상-
‘성전에 오르며 부르는 노래’라는 제목의 시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절기를 위해 다같이 이 찬송을 부르며 예루살렘을 향하던 모습을 묵상합니다. 오늘은 솔로몬의 찬송입니다.

1~2절
127편은 솔로몬에 의해 불려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 역사상 최대의 부를 구가한 왕으로 유명합니다. 그의 지시 아래 최초의 성전도 완성되었습니다. 당시로서는 가장 훌륭한 건물을 지었을 사람이지만, 어떤 훌륭한 건물을 짓더라도, 아무리 성을 지키더라도, 아무리 노력해도 주님이 없으면 헛일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노력하는 것 자체는 나쁜 것이 결코 아닙니다. 좋은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노력 자체가 좋은 것이라기보다는 무엇을 위해 수고하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악에 수고해도 헛되고, 멸망하는 자를 위해 수고해도 헛됩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이 무엇을 하든지 멸망하는 것을 위해 노력해도 허무해집니다. 모든 것을 채워 주시는 주님, 모든 것의 모든 것 되시는 주님을 맞이하지 않으면 인생은 아무리 번영한 듯 보여도 허무해지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의 영광을 위해 수고하는 자가 됩시다.

3~5절
자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들의 인생을 자신의 욕망대로 소비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로서 영적인 축복을 더해가도록, 영적인 인도로서 양육해 가야 합니다.

인생 가운데 헛된 일과 의미 있는 일을 이해하는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다음 세대에게 주님을 아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를 잊어버리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선물을 낭비하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 사람 자신은 보호받겠지만 그것도 허무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백성이 더해지는 것은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우리도 다음 세대가 영적인 재생산을 할 수 있도록 오늘 의미 있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말씀 적용-
오늘 내가 열심히 임하고 있는 일이 주와 함께 하고 있는 것인지 점검하겠습니다. 주님과 함께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면 그만두고, 주님을 위해 하는 일을 열심히 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정말 의미 있는 것을 분별하여 그것에 힘쓸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QT묵상 가이드] 2020년6월20일(토)

신명기 33:1~17
“언약에 근거한 아낌없는 축복”

-말씀 묵상-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 대한 모세의 축복이 기록돼 있습니다. 모세의 축복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나눠봅시다.

1~7절
모세가 하나님이 무수한 백성들을 사랑하는 분이라며 백성들의 지도자들이 이스라엘 지파들과 함께 모였을 때, 주님이 여수룬(사랑스러운 자, 이스라엘의 다른 이름)에서 왕이 되실 것이라고 찬양합니다.

언뜻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만의 일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5절에 ‘그 백성의 지도자들이 이스라엘의 지파들과 함께 모였을 때’ 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이 ‘백성’과 ‘이스라엘 지파’는 구분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다른 백성들이 모일 때 사람들은 죄로부터 해방되어 진정한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회복되고,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서 완성된다는 비전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이스라엘이 첫 번째 모델이며 메인이지만, 이스라엘을 축복의 통로로 사용해 모든 백성이 축복받을 것임을 시사합니다. 이것은 나중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그리스도인들도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르우벤 지파와 유다 지파에 대한 모세의 축복이 기록돼 있습니다. 이들 12지파에 대한 축복은 과거 그 조상인 야곱(이스라엘)이12명의 아들을 축복하는 내용(창세기 49장)과 대비됩니다. 그것을 보면 야곱 때보다 대체로 분명하게 축복의 내용이 좋아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순서대로 변화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장자인 르우벤은, 야곱 때는 아버지를 욕되게 한 죄가 언급되지만 모세 때는 번영까지는 아니지만 멸망하지 않고 계속되는 존속의 축복이 주어집니다. 이어서 유다에 대한 축복이 전해집니다. 야곱 때는 유다에서 왕이 나오는 축복이, 모세는 자신의 힘으로 싸우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할 때 승리하는 축복을 주고 있습니다.

르우벤은 장자이기 때문에 먼저 순서가 오는 것이지만, 유다는 야곱 때에 비해 형 시므온이나 레위의 자손보다 먼저 축복을 받습니다. 이는 유다 지파에서 예수가 나오는 특별한 축복과, 과거 형들이 저지른 죄로 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8~17절
레위 지파와 베냐민 지파, 요셉 지파에 대한 축복이 기록돼 있습니다. 모세의 축복에서는 시므온 지파에 대한 축복은 생략되어 있습니다. 모세 때도 레위와 시므온이 함께 적혀 있었고, 그들은 자신들의 여동생이 모욕당한 것에 대한 분노를 참지 못하고 싸움을 일으키고 축복을 받을 때임에도 불구하고 저주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모세 때는 레위에게 하나님을 섬기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빌고, 백성들의 제물을 주님 앞에 드리는 역할을 맡겼고, 재산의 축복까지 주었습니다.

다음은 베냐민, 가장 막내가 등장합니다. 야곱 때 약탈하는 자로 표현되지만, 모세 때는 주님의 곁에서 살며 그분의 어깨 사이에서 쉴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나중에 베냐민 지파는 사사기에서, 내전으로 멸망할 듯 하나 왕국 시대에 유다와 함께 있게 되는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순서가 빨라지고 있는 것도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의 마지막은 요셉입니다. 요셉은 야곱 때도, 모세 때도 부, 자손, 위엄의 축복이 있습니다. 요셉의 공적에 의한 것입니다.

주님은 이러한 축복을, 앞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모두 순종하지 못할 것을 아시면서도 그분의 백성들에게 주십니다. 주님의 사랑의 크기와 그 인내, 또한 은혜에 감사를 드립시다.

-말씀 적용-
우리가 미숙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며, 오늘도 겸손히 해야 할 일을 다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주님의 은혜를 잊지 않는 자가 되게 해주세요. 자신의 힘만으로 살아가고 있는 어리석음을 기억하며 주께 감사할 수 있게 해주세요.

[QT묵상 가이드] 2020년6월19일(금)

신명기 32:37~52
“열방의 찬송을 받으실 생사화복의 주권자”

-말씀 묵상-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는 노래의 마지막 부분과 모세 개인에 대한 하나님의 처분이 선고됩니다.

미숙한 자의 순종을 통해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비전을 묵상하고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37~47절
하나님이 모세에게 부르게 한 노래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43절까지가 모세의 노래입니다. 이 노래의 끝맺음은, 백성을 진정으로 살리고 심판하며 영원하신 분은 이 성경의 하나님 외에는 없다고 찬양을 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이 불순종한 백성을 징계하실 것을 선포함과 동시에 주님에 대해 교만해진다면, 징계에 쓰임 받은 백성들조차 복수의 심판은 주님이 하십니다. 거룩하신 분은 주님이며, 복수와 위로를 할 수 있는 것도 주님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확고히 하고 주님을 신뢰하며 주님의 권위 가운데 살아야 합니다.

44절을 보면, 이 노래들은 눈의 아들 호세아(여호수아, 민13:16)와 함께 부릅니다. 이것은 세대교체를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전해진 말씀은 의미 없는 말이 아니라 의미 있는 말, 생명과 직결되며 나아가 생명 자체라고 선포합니다. 모세가 전하고 싶었던 내용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 행하라는 것입니다.

48~52절
지금까지 40년 동안 주님을 충실히 따랐던 모세이지만, 주의 적절한 심판이 모세에 대해서도 이루어집니다. 모세가 순종을 계시하고, 하나님이 그 옳음을 모세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이 들어갈 땅을 고지에서 볼 수 있지만 들어갈 수는 없으며 죽을 것을 선고받습니다.

엄격하다고도 볼 수 있는 결정입니다. 모세는 과거 백성들이 광야에서 물을 찾아 불평을 할 때 주님의 말씀에 따라 물을 내었습니다. 성경의 명확한 기록에 의하면 두 번째일 것입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 말씀대로 했는데 두 번째 때는 물을 내라고 바위에 명하기만 하면 좋았을 텐데 지팡이로 두 번 쳤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마음에 교만함이 생겨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음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 일에 대한 책임을 확실히 주시고 다시 한 번 순종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그 결과, 모세는 순종했고 가나안 땅에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는 주님의 은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세에게 가나안 땅을 보여주십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모세는 온전히 하나님의 백성으로 더해졌고, 가나안 땅보다,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어받을 것이 선포되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과거에 순종할 수 없었던 부분이 있었지만, 순종으로써 이 땅에서의 인생을 끝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맡은 일에 충실하게 순종하고, 그것을 멈출 때도 주께 충실히 순종하는 자가 하나님의 비전을 봅니다. 오늘 우리도 내가 이룰지 어떨지를 떠나, 하나님 나라 실현의 비전을 보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사역하고, 사역을 물려줍시다.

-말씀 적용-
하나님의 사역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주님이 그만두라고 하면 그만두고, 주님이 하라고 하면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나의 정의가 아닌 말씀과 하나님의 마음을 따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QT묵상 가이드] 2020년6월18일(목)

신명기 32:15~36
“하나님을 저버림이 실패의 이유입니다”

-말씀 묵상-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노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모세는 노래를 사용해 이성적으로, 또 정서적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전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린 결과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노래하고 있습니다.

15~26절
먼저 여기서 나오는 “여수룬”은 이스라엘입니다. 직역하면 “사랑스러운 자” 라는 의미로, 신명기에서는 이후 두 구절, 또 이사야에도 이 표현이 나옵니다. 그런데 노래 내용이 이스라엘의 상황이 좋을 때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을 화나게 했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재앙을 내리셨으며 모든 백성을 한번에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버릴 정도였습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떨어져 있다면 알고 있든 말든 관계없이 멸망하고 맙니다.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죠. 직접적인 이유가 따로 있기 때문에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 생각하지만 영적으로 근본적으로 사람이 고통을 당하게 된 원인은, 주를 버리고 주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축복이 주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께 감사하기는커녕 오히려 주님을 버리는 어리석음도 결국은 죄로 인해 주님의 은혜를 모르고 자신이 이룬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생각하기 전에 주님과의 관계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루를 시작할 때 기도하는 것, 하루의 마지막에 기도하는 것은 그러한 의미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27~36절
모세의 노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주님은 주님을 버린 백성에게 사람을 이용한 징계도 허락하십니다. 그러나 그 징계에 쓰임 받은 이스라엘 이외의 백성들이 거룩했기 때문에 쓰임 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들 자신도 문제 투성이였지만 주님이 사용하신 것뿐인데 그들은 자신들이 뛰어나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이겼다고 착각하고 맙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해 사용한 백성들도 하나님은 제거하십니다.

결국 교만해진 이스라엘도 징계를 받고 겸손함을 회복합니다. 한편, 주님이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징계했지만 자신들도 주님께 돌이키지 않으므로 주님은 그 백성들도 제거하십니다. 결국 모든 백성이 교만했던 것이 낮아집니다. 주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아 그 결과 주님의 위대하심이 나타납니다.

주님이야말로 올바른 분이기 때문에 심판, 복수, 보복은 하나님만이 본질적으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주님을 두려워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자가 됩시다.

-말씀 적용-
자신의 상황을 하나님 탓으로, 환경 탓으로 돌리지 않고 오늘 회개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금방 거만해지는 저희를 용서해주세요. 겸손하게 주님 앞에서 회개할 수 있는 저와 백성이 되도록 도와주세요.

[QT묵상 가이드] 2020년6월17일(수)

신명기 31:30~32:14
“높은 사랑으로 이끄신 은혜의 자취를 기억하라”

-말씀 묵상-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혜를 주시고 하나님의 약속을 글자로써의 논리적인 전달 방법뿐만 아니라, 노래를 통해 정서적으로, 그리고 친근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 찬송에 담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님이 전하고자 하시는 마음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31:30~32:6절
노래의 시작은 주님이 주신 말씀을 모든 사람이 듣도록 하는 권유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비와 이슬처럼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입니다. 모세 자신도 주님의 이름을 전하는 자로서 나아가지만, 백성들 또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촉구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억했으면 하는 주님을 대하는 방법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전합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시고 정직하시며 진실한 분임을 선포합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주님이 신실하시고 주님을 따를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누구의 말을 따르고 있나요? 그것에 어느 정도의 신빙성이 있을까요? 주님의 말씀은 신실하므로 순종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백성들은 자신들의 부정함 때문에 스스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해치는 잘못을 저지를 것을 주님은 알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미리 주님을 따르지 않는 백성들에게 주님이 어떤 분인지를 기억하라고 충고하고, 실제로 문제가 있을 때 회개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7~14절
지금까지의 노래에 이어 주님이 어떤 분이시며, 구체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대해주셨는지를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래하는 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태어나기 전부터 계획하시고 땅을 주시며, 그곳에 이르도록 돌보시고 신실하게 인도하셨습니다. 애초에 우상은 없고 주께서 인도해 주셨습니다. 필요한 양식도 풍족하게 주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그동안 어떻게 우리를 대해주셨는지를 보면, 앞으로도 주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며, 필요를 채우실 뿐 아니라 넘치게 해주시는 분입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주님께 맡기며 나아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말씀 적용-
말씀을 지식으로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찬양하며 생활에서 실천하고 실재하는 것으로서 전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주님의 은혜가 오늘도 풍족함을 잊지 않고,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께 맡기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QT묵상 가이드] 2020년6월16일(화)

신명기 31:19~29
“불순종의 결과를 마음 깊이 새기십시오”

-말씀 묵상-
지금까지 죄, 구원, 거룩케 함, 회개, 그리고 심판과 축복 등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죄에서 해방시키시는가 하는 기본에 대해 가르쳐 온 모세 오경의 클라이맥스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이 주신 구제 계획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앞으로 어떻게 반응해 나갈지를 가르치고 차기 지도자인 여호수아를 지명하는 예언적인 말씀입니다.

19~23절
모세는 하나님이 주신 구제와 축복의 약속을 사람들이 잊지 않도록, 주님의 지혜로 노래로써 다음 세대에 이어지도록 했습니다. 다만 모세가 예상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낙관적이지 않고 매우 비관적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는 노력을 해도 사람들이 불순종하게 되고 하나님을 거역한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대하는 자세를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애초에 사람이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과 인내로써 최선의 것을 보여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좋은 영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인내와 사랑으로 구하시려는 것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사람들은 순종하지 못하고 우리도 어떤 부분이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불순종의 때에 주어지는 경고 또한 말씀 그대로인 것을 기억하여 하나님의 성실하심과 사랑을 알고 회개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모세는 여호수아를 차기 지도자로 지명하고 그를 격려하는데, 여호수아 본인의 마음에는 주변이 생각하는 것보다 연약함과 두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말씀을 필사적으로 따르면서 평범한 사람이었으나 훌륭하게 이스라엘을 이끌어가게 됩니다.

24~29절
모세는 거룩함의 회복을 담당하는 제사를 섬기는 레위인에게도 마지막 충고를 합니다. 그것은 주님의 약속의 증거인 언약궤 곁에 이러한 충고를 잊지 않도록 보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들과 레위인들이 거역해 주의 분노를 불러올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주님으로 인해 구원받았으나 주님의 징계가 있다는 것도 명심합시다. 회개를 잊은 그리스도인은 거룩함을 표현해야 하는 존재인데 오히려 부정함을 나타내게 됩니다.

-말씀 적용-
우리가 주님을 따르지 않고 있음을 느꼈을 때 솔직하게 회개할 수 있도록 주님을 구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주여, 어리석은 우리가 주님을 떠나지 않고 회개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